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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워 하지 말라(신명기20:1-9)
고영수 2023-03-11 추천 0 댓글 0 조회 388
[성경본문] 신명기20:1-9 개역개정

1. 네가 나가서 적군과 싸우려 할 때에 말과 병거와 백성이 너보다 많음을 볼지라도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애굽 땅에서 너를 인도

2. 너희가 싸울 곳에 가까이 가면 제사장은 백성에게 나아가서 고하여 그들에게

3. 말하여 이르기를 이스라엘아 들으라 너희가 오늘 너희의 대적과 싸우려고 나아왔으니 마음에 겁내지 말며 두려워하지 말며 떨지 말며 그들로 말미암아 놀라지 말라

4.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너희와 함께 행하시며 너희를 위하여 너희 적군과 싸우시고 구원하실 것이라 할 것이며

5. 책임자들은 백성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새 집을 건축하고 낙성식을 행하지 못한 자가 있느냐 그는 집으로 돌아갈지니 전사하면 타인이 낙성식을 행할까 하노라

6. 포도원을 만들고 그 과실을 먹지 못한 자가 있느냐 그는 집으로 돌아갈지니 전사하면 타인이 그 과실을 먹을까 하노라

7. 여자와 약혼하고 그와 결혼하지 못한 자가 있느냐 그는 집으로 돌아갈지니 전사하면 타인이 그를 데려갈까 하노라 하고

8. 책임자들은 또 백성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두려워서 마음이 허약한 자가 있느냐 그는 집으로 돌아갈지니 그의 형제들의 마음도 그의 마음과 같이 낙심될까 하노라 하고

9. 백성에게 이르기를 마친 후에 군대의 지휘관들을 세워 무리를 거느리게 할지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두려워 하지 말라(신명기20:1-9/2023.3.12.오전)

 

1. 한국에는 신라 시대의 작품으로 알려진 심청전이라는 문학작품이 있습니다.

저작 연대도, 작자도 알 수 없지만,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가난한 심봉사의 딸로 태어난 심청이는 어려서 모친을 잃고, 눈먼 아버지와 함께 살았습니다.

어느 날 중이 찾아와서 공양미 3백 석을 부처에게 바치면, 아버지의 눈을 뜰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자신을 팔아서 바다의 용왕에게 제물로 던져졌는데, 바다의 용왕이 심청이의 효성에 감복해서 그녀를 연꽃에 실어서 다시 세상으로 보내는데, 그 연꽃이 너무 아름다워서 사람들이 임금에게 바쳤더니 그곳에서 심청이나 나왔고, 왕은 그녀의 아름다움에 반하여 혼인하고, 심청이는 아버지를 찾고 싶어서 시각장애인들만 모시는 큰 잔치를 베풀었고, 살아 돌아온 딸 심청이가 너무 반가워서 심봉사가 눈을 번쩍 떴다는 내용입니다.

사람들이 만들어낸 이런 이야기는 현실이 어려워도 인간의 본질을 잃지 않으면, 나중에 보상을 받고 잘된다는 그런 줄거리가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인간의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처음에 어려우면 끝까지 어렵고, 갈수록 태산이라는 말처럼 시간이 지나면서 인생이 더욱 비참해지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래서 인생은 첫 출발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도둑질로 시작한 인생은 죽을 때까지 그 버릇을 버리지 못하고, 거짓말하거나 폭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난주에는, 19살 청년이 부모를 칼로 찔러 죽이고 도망 다니다가 잡힌 사건이 있었는데, 부모를 죽인 제 인생이 이 세상에서 어떤 결말을 맞이한다는 것을 조금만 깨달았더라면 결코 이런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지혜로운 자녀는 나를 낳아주고 길러주신 부모를 공경하면서 부모를 통해 인생을 배우고, 과거에 일어난 사건들을 가지고 오늘을 조명하고 미래를 준비합니다.

다시 말해서 온고지신(溫故知新)이라고, 부모님이 걸어오신 옛것을 가지고 오늘의 나를 알고, 역사를 배워서 미래를 준비하는 것입니다.

 

2. 이런 것은 우리의 신앙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내가 너무 어렵고 고통스러운데, 당면한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알지 못할 때, 내가 만난 하나님이 내 과거에 내 인생을 위해서 어떻게 역사하시며 축복해 주셨는지를 깨닫게 되면, 우리의 미래가 보이고 여전히 변함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고 앞을 향해서 담대한 마음으로 나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향해서 하시는 말씀이 무엇입니다?

본문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사회생활을 하면서 제일 많이 느끼는 감정이 바로 이 두려움이 아니겠습니까?

내일에 대한 염려, 인간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갈등과 충돌, 경험해 보지 못한 미지의 환경이나 갑자기 내 인생 한가운데로 들이닥친 문제들은 우리를 매우 두렵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스라엘이 두려움에 빠지고, 오늘 우리도 믿음으로 살아간다고 하면서도 자주 이런 두려움에 빠지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해 오랫동안 우리를 괴롭히며 불신앙에 빠지도록 만드는 이 두려움의 문제를 해결하고, 약한 자에게 힘을 주시고 은혜 베푸시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본문 1절을 보면 이스라엘이 두려움에 빠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침공해 오는 적군을 보니 그들의 군대 숫자나 그들이 소유한 말과 병기가 너무 많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이라면 자기보다 강하고 자기보다 뛰어난 무기나 능력을 갖춘 자를 두려워하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강한 군대 앞에서 제일 먼저 느끼는 감정은 죽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본문의 내용을 보면, 이스라엘이 적군을 보고 두려워하는 이유는, 그들의 숫자나 병기나 많은 말에 있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3. 1절에 보면, 두려워 말라는 것은, "애굽 땅에서 너를 인도하여 내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하시" 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스라엘의 두려움은 눈에 보이는 현실이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내면에 자리 잡은 불신앙이 그들을 두렵게 만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미 출애굽을 통해서, 그리고 광야의 40년의 세월을 통해 이스라엘과 함께하시시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3절에서 하나님은, 거듭 이스라엘을 향해 말씀하고 계시는데, "마음에 겁내지 말며 두려워하지 말라 떨지 말며 그들로 말미암아 놀라지 말라" 고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4절에 보니,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너희와 함께 행하시며 너희를 위하여 너희 적군과 싸우시고 구원하시" 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으로 겁먹지 말라는 것입니다.

삼상 7장에 보면, 사무엘이 이스라엘을 미스바에 모으고 함께 금식하며 기도하려고 할 때, 블레셋은 이스라엘이 전쟁을 준비하는 줄 알고, 갑작스럽게 이스라엘에 쳐들어 왔습니다.

그때 이스라엘은 전쟁에 대하여 아무런 준비를 하지 못한 상태였고 백성들은 두려워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위해 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사무엘은 위기를 만나자 먼저 하나님께 번제를 올렸고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였고,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들으시고 블레셋으로부터 그들을 구원해 주셨습니다.

삼상7:10절에 보면, "사무엘이 번제를 드릴 때에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가까이 오매 그날에 여호와께서 블레셋 사람에게 큰 우레를 발하여 그들을 어지럽게 하시니 그들이 이스라엘 앞에 패한지라" 고 하였습니다.

그후로 블레셋은 사무엘이 사는 날 동안에는 두 번 다시 침략하지 못했습니다.

 

4. 우리의 삶은 끊임없이 전쟁하는 인생입니다. 국가 간에는 영토분쟁이며 무역전쟁이나 외교전쟁이 있습니다. 개인에게는 직장에서 동료나 상사와의 전쟁이 있고, 학생들은 시험과의 전쟁이 있고, 주부는 매일 가족을 위해 전쟁하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왜 이런 힘든 전쟁을 해야 합니까? 정글에서 살아남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또 다른 전쟁이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 자녀로서 그의 거룩한 백성으로서의 영적인 전쟁이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이런 전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믿음이 없이는 이길 수 없는 싸움입니다. 그러므로 내 인생을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하면서, 에스더처럼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나아갈 때, 하나님은 우리의 손을 잡아주시고, 우리를 위해 싸우시고, 우리를 모든 환란과 문제에서 건져주심으로 승리하는 줄 믿습니다.

믿음이 두려움을 물리치고, 믿음이 어떤 상황에서라도 이길 수 있도록 힘을 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전쟁은 인간적인 계산으로 보면, 대부분이 전혀 승산이 없는 싸움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이 이런 전투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함께하심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어떤 문제가 주어졌든지 간에, 그것은 내 힘으로 나 혼자서는 이길 수 없는 싸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생의 문제를 만날 때마다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자녀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유산이 있다면, 그것은 믿음의 유산입니다.

인생의 전쟁터에서, 인생의 문제로 내 삶이 좌초되고 침몰될 상황에 빠졌을 때, 세상의 모든 닷줄은 끊어버리고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기도하며, 그 기도에 응답으로 승리하는 그런 삶을 우리 자녀들에게 물려 주는 것보다 더 위대한 유산은 없습니다.

 

5. 그런데 본문 5절 이하에 기록된 내용은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국가의 전쟁은 성인 남자라면 누구나 치러야 하는 의무이지만, 그런데도 여기에는 면제 대상이 있습니다. 그 대상에 포함되는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자세한 설명을 생략하고 말씀드리면, 두려움에 떠는 겁쟁이는 싸움터에 나가서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기 때문에 소집에서 면제가 되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본문 5절부터 8절의 내용은, 두려움에 떠는 겁쟁이들이 이 핑계 저 핑계로 둘러대고 있는데, 이런 사람들은 전쟁에 합당한 군사가 될 수 없으니 아예 빼버리는 것입니다.

요즘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와의 전투에서 수감된 죄수들을 동원하고, 용병들을 고용해서 싸우고 있는데, 최근의 소식에 의하면 그들이 마치 영혼이 없는 좀비처럼 행동한다는 것입니다.

옆에 동료가 총에 맞아 피를 흘리며 쓰러져도 조금도 동요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입니다.

이유는 그들에게 마약을 먹여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이런 것은 악마가 아니라면, 인간으로서는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6. 다윗이 어린 목동 시절에 어떻게 전쟁터에서 물맷돌을 가지고 블레셋의 거인 골리앗을 물리칠 수 있겠습니까? 그도 러시아군대처럼 마약을 해서 겁이 없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이런 싸움은 세상적인 방법으로는 불가능한 싸움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어려서부터 하나님을 의지하였고, 이 믿음으로 골리앗을 무너뜨려 이스라엘을 위기에서 구원한 것입니다.

그때 다윗이 한 말이 무엇입니까?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고 하면서 계속해서 말하기를,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삼상17:45,47) 고 하였습니다.

비록 어린 소년이지만 얼마나 멋지고 담대한 고백입니까? 이런 고백이 어디서 나옵니까?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그의 구원을 사모하는 믿음의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국가의 전쟁이든지 개인 인생의 전쟁이든지, 또 믿음의 공동체인 교회가 치르는 세상을 향한 영적 싸움이든지, 두려움과 비겁하고 용기 없는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싸울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7장에서 이스라엘을 치러 올라온 미디안 연합군과 싸움을 위해 일어선 기드온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가 전쟁을 위해 모여든 사람들에게 제일 먼저 한 말이 무엇입니까?

"누구든지 두려워 떠는 자는 길르앗 산을 떠나 돌아가라"(7:3)고 하였습니다.

32천 명이 모였는데 22천 명이 돌아갔고, 그래도 하나님은 군대의 숫자가 많다고 하시면서, 그들을 샘물가로 데리고 가서 전쟁에 합당치 않은 사람 77백 명을 돌려보내고 오직 3백 명의 숫자로 미디안 연합 대군을 물리치고 승리를 얻도록 하셨습니다.

 

7. 주님도 말씀하시기를, 염려한다고 작은 키가 자라고, 근심한다고 먹을 양식을 포함한 의식주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고 하셨습니다(6:25-34).

도리어 공중의 새와 들의 백합화를 먹이시고 입히시고 공급해 주시는 하나님을 믿으라 하였습니다.

그리고 본문 9절의 말씀을 보면, 지도자를 뽑을 때, 그 대상 중에서 두려워하는 자나 핑계 대기를 좋아하는 자를 다 돌려보낸 후에 믿음과 용기가 있는 사람 중에서 지도자를 뽑도록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슨 일을 시작할 때마다 돈 걱정이나 하고 사람 핑계나 되고 환경을 탓하는 사람은 지도자로 세울 수 없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주위에는 사망의 권세로 가득하여 있고, 우리는 그들을 쳐서 무너뜨려야 전도의 열매도 맺을 수 있고, 교회가 새 힘을 얻을 수 있는데, 다른 사람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는 것이 아니라 두려워하는 마음에서 핑계 대고 다른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 사람은 함께 모으는 사람이 아니라 반대로 헤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영국의 사업가 아서 랭크는 감리교회의 독실한 신자였는데, 그는 수많은 일에 매달리다 보니 염려가 되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고, 무엇보다 불확실한 미래로 인해 고민하다가 내린 결론은, 매일 염려할 것이 아니라 일주일에 하루만 염려하자고 생각하고, 그래서 만든 것이 염려 상자였습니다.

매일 염려되는 일을 적어서 염려 상자에 넣고, 매주 수요일에 그것을 열어 보기로 했는데, 놀랍게도 그때는 고통스러울 정도로 힘들게 하던 대부분의 염려가 그사이에 해결이 되었거나 대수롭지 않은 문제로 남아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우리에게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라고 하시면서,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가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는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 아시느니라"(6:30-32) 고 하셨습니다.

 

8.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한국 사회에서도 군대가지 않은 사람을 은근히 차별했습니다.

하물며 당시 이스라엘에서 죽음이 두려워 전장에서 돌아간 사람들이야 말할 것도 없습니다.

전쟁은 숫자나 무기에 승패가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전장터에 있는 사람의 마음에 달려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세의 후계자로 세움 받은 여호수아에게 반복해서 하신 말씀이,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1:9) 고 하셨습니다.

지금도 세상은 우리에게 두려운 마음을 가져다주고, 염려 근심 걱정으로 공격해 옵니다.

이런 것이 우리 마음을 사로잡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 무릎을 꿇고 도움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면서, 본문 4절에서 굳게 약속하신 하나님이 함께 하시며 우리를 위해 대신 싸우시고 모든 어려움에서 구원하여 주시는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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