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요한계시록14:14-20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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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또 내가 보니 흰 구름이 있고 구름 위에 인자와 같은 이가 앉으셨는데 그 머리에는 금 면류관이 있고 그 손에는 예리한 낫을 가졌
15. 또 다른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와 구름 위에 앉은 이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외쳐 이르되 당신의 낫을 휘둘러 거두소서 땅의 곡식이 다 익어 거둘 때가 이르렀음이니이다 하니
16. 구름 위에 앉으신 이가 낫을 땅에 휘두르매 땅의 곡식이 거두어지니라
17. 또 다른 천사가 하늘에 있는 성전에서 나오는데 역시 예리한 낫을 가졌더라
18. 또 불을 다스리는 다른 천사가 제단으로부터 나와 예리한 낫 가진 자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불러 이르되 네 예리한 낫을 휘둘러 땅의 포도송이를 거두라 그 포도가 익었느니라 하더라
19. 천사가 낫을 땅에 휘둘러 땅의 포도를 거두어 하나님의 진노의 큰 포도주 틀에 던지매
20. 성 밖에서 그 틀이 밟히니 틀에서 피가 나서 말 굴레에까지 닿았고 천육백 스다디온에 퍼졌더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수추 할 때가 되었습니다(요한계시록 14:14-20/2012.9.2.오후)
1. 사람들이 나이를 먹으면 자신의 살아온 세월에 대해서 후회를 많이 하게 된다고 합니다.
열심히 살았는데 결국 무엇을 위해 살았는지 모를 정도로 허무한 인생들이 있는가 하면, 인생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데도 그것이 바른 길이라 생각하고 어리석은 열심으로 허송세월을 보낸 사람들도 있고, 아름답고 훌륭한 꿈은 가졌지만 끝까지 그 꿈을 이루지 못하고 인생을 마감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 가운데는 역사적으로 너무 훌륭한 사람인데 그래서 그의 일생은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과 은혜를 베푼 삶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중요한 한 가지 사실을 제대로 깨닫지 못해서 잘못되고 안타까운 세월을 보낸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우리가 너무 잘 알고 있는 아프리카의 성자 알베르트 슈바이처 박사입니다.
알베르트 슈바이쳐 박사는 문학이나 철학자로서, 또는 신학자로서 의사로서, 또한 음악가로서 그 어떤 길을 걸아가도 당대의 최고의 실력자로 충분히 인정받을 만한 사람이었습니다.
80세의 노년의 몸임에도 불구하고 태양빛에 작렬하는 아프리카 오지에서 흑인들을 지도하며 한센 병동의 건설에 매달려 땀 한 방울 훔쳐 낼 그런 시간의 여유도 없이 정열적으로 일하였다고 합니다.
이 병동을 짓는 공사의 비용조차도 자신이 받은 노벨상의 상금을 전부 쏟아 부었다고 하니 얼마나 귀한 일을 했습니까?
유럽이나 미국의 수많은 대학들과 연구기관들이 최고의 보수와 대우를 약속하고 목이 빠지도록 그를 기다렸지만 그는 그런 것들을 쳐다 보지도 않고 반세기의 세월 동안에 원시림에 들어가서 원주민들을 상대로 의료사업에 전념하다가 일생을 마쳤습니다.
2. 이처럼 인간으로서는 가장 위대한 삶을 산 슈바이처이지만 그에게는 치명적인 결함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신학자로서 성경해석에 대한 문제가 많았던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말할 때, 예수는 자신이 메시아가 되기를 갈망했지만 현실은 메시아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는 메시아적인 행동을 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는 생각하기를 자신이 일정하게 정해진 코스로 나아가면 종말에는 자신이 틀림없이 메시아가 될 알았다는 것입니다.
결국 슈바이처는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신앙의 대상인 하나님의 아들이요, 자신을 모든 죄에서 구원해 낼 메시아가 아니라 행위의 모범자로 본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그렇게 훌륭하고 아름다운 사람 슈바이처를 가장 불쌍한 사람으로 만들고 만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많은 면으로 사람들의 모범이 되고 많은 감동과 은혜를 주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는 얼마든지 있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이 제 인생에서 가장 필요한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고 구원의 하나님 대신에 세상과 우상에 빠져 방황하고 있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3. 오늘 본문의 말씀은 세상 종말에 하나님은 두 가지의 추수, 곧 심판을 행하고 계심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첫 번째는 14-16절의 말씀으로 곡식을 거두는 추수로서 이것은 알곡을 모으는 심판 행위를 말하고 있습니다.
알곡을 모으는 심판 행위란 형벌이 아닌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 받을 영생에 대한 축복을 말하는 것입니다.
마태13:38-43절에 보면 같은 내용이 기록되어 있는데, 「추수 때는 세상 끝이요 추수꾼은 천사들인」데 가라지는 거두어 불사른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불신자들을 이 가라지로 표현하면서, 「풀무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고 하였고, 하나님을 믿는 자들을 가리켜, 「그 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 고 했습니다.
이것은 종말 이후에 믿는 자들이 어떤 곳에서 어떤 모습으로 영생을 누리는가 하는 사실을 확실하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장차 주님 앞에서 받을 심판은 두 가지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우리의 생각, 혹은 마음이고 다른 하나는 행위에 대한 결과입니다.
슈바이처처럼 아무리 아름답고 고귀한 삶을 산다고 하여도 그 생각이 잘못되어 있다면 이것은 근본이 잘못된 것이고, 근본이 잘못될 때 온전한 믿음을 가질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이 마태16장에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제자들의 생각을 물은 것이고, 베드로는 주님이 원하시는 백점짜리 신앙 고백을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이런 고백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네 자신이나 조상에게 지혜나 능력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위에계신 하나님이 깨닫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4. 세상에는 신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많은 사람들에게 신앙의 대상이 되고 있는 우상들이 많지만, 그 가운데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고백하게 된 것은 우리가 받은 은혜 중에 은혜요 축복 중에 축복이라 생각합니다.
왜냐면 이것은 혈육이나 세상적인 지혜로는 모두지 깨달아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성령께서 우리 가운데 오셔서 말씀을 깨닫게 하시고 천국의 소망을 갖게 하신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고백하는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구원의 보증이요 영원한 축복인 줄 믿습니다.
둘째로 우리가 받을 심판은 행위에 대한 심판입니다.
12절에 기록된 말씀에,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고 했습니다.
여기서 「예수 믿음」 이라는 말은 예수님이 저들에게 주시는 믿음 보다는 그들의 예수님께 대한 믿음, 곧 예수님께 대한 충성된 지, 정, 의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 지상에서 믿음을 지키기 위해 받아야만 하는 환란과 핍박이라는 고통에도 생명은 버릴지언정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고 인내함으로 승리하는 것을 말합니다. 믿음 지킨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세월이 갈수록 더욱 힘든 일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왜냐면 우리에게는 믿음의 지혜가 있고 믿음을 지켜낼 만한 강력한 무기가 우리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주님이 환란과 핍박 가운데 있는 소아시아의 7교회에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계2:10)는 말씀입니다.
믿음은 무엇으로 지킬 수 있습니까? 우리의 생명입니다.
빌라델비아 교회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주님의 말씀을 지키고 주님의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한 것은, 이것을 위해 저들의 생명을 걸었기 때문입니다.
서머나 교회가 고난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환란 속에서 믿음을 지키며 끝까지 충성된 모습을 가질 수 있었던 것도 저들이 여기에 생명을 걸었기 때문입니다.
5. 본문 15절에서, 「거둘 때가 이르러 땅에 곡식이 다 익었」다고 했는데 이 말씀의 의미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거둘 때가 된 것은 하나님의 예정된 때가 찼다는 것을 의미하고, 곡식이 다 익었다는 것은 거룩한 성도들에게서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들이 충족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는 자들 곧 의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저들의 영원한 내세를 약속하는 심판이요, 그들이 이 땅에서 복음을 위해 수고한대로 받을 상급에 대한 심판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교회를 종교적인 의무감을 가지고 다니는 자가 있다면 큰일입니다.
받은 직분과 사명을 인생의 짐으로 여기는 자가 있다면 정말 큰일입니다.
내 스스로가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잘 알면서 육신에 눌려 주신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는 자가 있다면 정말 두려운 일입니다.
왜냐면 하나님은 두 번째 심판을 위해 지금 또 다른 천사를 보내 이 땅을 심판하시는데 그 심판의 모습이 너무 끔찍하고 처참하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 심판은 알곡을 모아 창고에 거두어 들이는 심판이라면 두 번째 심판은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입니다.
여기 「땅의 포도송이를 거두라 그 포도가 익었느니라」 고 했는데, 여기서 말하는 포도는 불신자들, 악한 자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기서도 포도가 익었다는 것은 그들의 죄악이 마치 소돔과 고모라처럼 관영해버리고 말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풍성이 지나치게 바람을 많이 먹어 더 이상 공기가 들어갈 수 없는 상황, 곧 터지기 직전에 이른 것처럼 세상의 불신자들의 범행이 더 이상 죄를 용인할 수 없을 지경에 까지 도달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6. 그리고 19절에 보니, 「땅의 포도를 거두어 하나님의 진노의 큰 포도주 틀에 던지매」 하였는데, 여기서 강조하는 것은 인간의 불신과 악행에 대한 결과가 얼마나 무섭고 끔직한 것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무엇입니까? 그 분의 죄악에 대한 심판 행위를 말합니다.
그 진노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누가23:30절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때에 사람이 산들에 대하여 우리 위에 무너지라 하며 작은 산들에 대하여 우리를 덮으라 하리라」 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불의한 자들에 대한 진노가 마지막 절인 20절에서는 포도주틀에 밟혀 포도송이가 깨어지고 으스러지는 것처럼 악인들의 몸에서 흐르는 피가 온 세상을 덮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특히 성 밖에서 이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은 완전한 멸망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당하는 고통은 암환자가 당하는 고통과는 비교할 수 없는 고통입니다.
사랑하는 자식을 눈앞에서 죽임 당하는 꼴을 보면서 애간장 녹이는 부모의 찢어지는 가슴과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악인들은 그 고통과 진작 회개하지 못한 억울함에 이를 갈고 있는 것입니다.
7. 사람의 모든 행위에는 결과가 따라 오기 마련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정해 놓으신 법칙입니다.
악행과 불신에 대한 영벌이 있듯이 믿음으로 살아온 삶에도 반드시 영생과 상급이 따르는 줄 믿습니다.
바울은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라고 하면서 장차 우리가 받을 영광은 「족히 비교할 수 없다」(롬8:17-18)고 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게 하신 성령님의 도우심에 감사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 가운데는 착하고 신실하고 깨끗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많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택하지 않으시고 마른 막대기 같은 보잘 것 없고 불쌍한 우리를 택하시고 구원하심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악행은 용서하시고 기억하지도 않으면서도 우리의 의롭고 거룩한 것은 영원히 기억하시고 은혜 베푸시고 상급을 베푸시는 일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도 얼마 후면 개인적인 추수의 때를 맞이하게 됩니다.
지상에서의 추수 때에는 풍성함으로 감사하고, 주님 앞에서 받는 마지막 심판의 추수 때에는 칭찬과 상급으로 영생에 이르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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