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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지키는 자의 행복(요한계시록 14:8-13)
고영수 2020-05-10 추천 0 댓글 0 조회 499
[성경본문] 요한계시록14:8-13 개역개정

8. 또 다른 천사 곧 둘째가 그 뒤를 따라 말하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모든 나라에게 그의 음행으로 말미암아 진노의 포도주를 먹이던 자로다 하더라

9. 또 다른 천사 곧 셋째가 그 뒤를 따라 큰 음성으로 이르되 만일 누구든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

10. 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니 그 진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주라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 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

11.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의 이름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하더라

12.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13.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이르되 기록하라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이르시되 그러하다 그들이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그들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믿음 지키는 자의 행복(요한계시록 14:8-13/2012.8.12.오후)


1. 사도바울은 에베소 교회의 성도들을 향하여 육신의 생각을 버리라고 한 것은 육신의 생각은 사람의 총명을 어둡게 만들고 결국에는 더러운 욕심으로 말미암는 방탕한 생활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엡4:17-24).
한 번 방탕의 길로 가기 시작하면 시간이 가면 갈수록 되돌아오기 어려운 길입니다.
재미삼아 시작한 세상 쾌락이 나중에는 우리의 영혼을 죽인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어머니들이 자식들을 위해 희생하는 것은 재미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쁨으로 자원하는 마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 기쁨과 자원하는 마음이 어디서 옵니까? 사랑하는 마음에서 오는 것입니다.
세상의 유행이나 내 육신의 욕심을 따라가는 것만이 재미가 아닙니다.
어머니의 희생에도 보람이 있고 기쁨이 있고 자랑이 있듯이 우리의 신앙생활의 경주하는 모습 속에도 기쁨과 감사와 소망이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는 한 번 시작한 신앙의 경주를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주님이 우리에게 승리를 약속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면 우리에게 많은 위로가 되는 것은 그렇게 왕성하고 천하무적 같은 힘으로 교회와 성도들을 핍박하던 적그리스도의 세력인 바벨론도 무너질 때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바벨론이라고 하면 고대 국가인 메소포타미아의 수도 바벨론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노아의 홍수 이후에 시작된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한 세력을 말하는 것입니다.
바벨론이라는 말의 의미는 하나님을 향한 도전과 그 결과로 인한 혼란의 상징입니다.
그래서 사도요한이 이 서신을 기록할 당시의 바벨론이란 다름 아닌 로마제국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시날 평지에 모인 사람들이 고대시대에도 하늘에 닿을 탑을 쌓아 올리기 시작했다는 것은 그들의 과학의 능력이 매우 발달한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사람들이 짐승의 표를 받는 것도 간단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신앙이 견고한 사람이 아니고는 자신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짐승의 표를 받을 가능성이 많으며, 나중에 깨닫는다고 하여도 그곳에서 벗어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2. 요한계시록 전체는 성도들의 인내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에베소 교회를 향해서는,「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 (계2:3)이라 했고, 서머나 교회를 향해서는 「너희가 십일 동안 환란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2:10)고 함으로 환란을 인내하고 충성하면 승리의 면류관을 얻을 것을 약속했으며, 두아디라 교회에는 직접,「사랑과 섬김과 인내를 안」(2:19)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종말 시대를 사는 성도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의 인내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언제까지 인내해야 합니까?
8절 말씀에 기록된대로 큰 성 바벨론이 무너질 때까지입니다.
즉 하나님의 심판이 악의 세력위에 임할 때 까지를 말하는 것입니다.
또한 이미 13:10절에서,「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여기 있」다고 했습니다.
왜 인내를 강조하고 있습니까?
인내란 교회를 중심으로 하는 신앙생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가르침이기 때문이며, 거룩한 성도들에게는 인내야말로 가장 견고한 영적인 무기기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우리가 환란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란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알기」 (롬5:3-4)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신앙의 인내가 없이는 연단은 물론이고 소망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내하지 않으면 안되는 그런 환경 가운데 있습니다.
또한 인내함에 실패했을 때 오는 엄청난 결과를 우리는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3. 그렇다면 인내하는 비결은 없습니까?
인내의 비결은 다름 아닌 자기 희생에 있습니다.
예를 들어 교회 안에서 인내하는 신앙이 없다고 한다면 우리의 신앙은 세상의 일반 종교와 다를 바가 없는 것은 자기 희생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가 희생을 하지 않으면 안됩니까?
그 답은 13절에 있습니다.
곧,「저희의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저희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행한 「일」이란 핍박에 대한 신앙의 인내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행한 일이 따른다는 것은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받은 만큼의 고난에 대한 보상이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 첫 번째 보상을 10절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적그리스도의 세력이 성도들을 핍박할 때에 세상 사람들 앞에 구경거리와 즐거움이 되게 했습니다(계11:7-10).
그런데 하나님은 그들이 행한대로 갚으시는데 「천사들 앞과 어린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원수는 하나님이 갚도록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중요한 사실은 성도가 박해를 받을 때 살이 찢어지고 피가 튀는 고통은 있었지만, 그들의 생명이 다하고 영혼이 하나님의 품에 안기는 순간 모든 고통과 수치와 슬픔은 사라지고 영원한 안식과 평안이 주어질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가 당하는 고난은 순간적이지만 그들이 받는 형벌은 영원한 형벌입니다.
그들이 받는 세상에서의 영광은 지극히 짧은 순간에 불과하지만, 우리가 받을 영광은 영원합니다.
또한 성도가 맛보는 수고는 세상에 있는 잠시잠깐의 순간이지만, 저들이 받는 하나님의 심판은 영원한 고통일 뿐입니다.
그래서 성도의 수고는 끝나지만 그들은 밤낮 쉼을 얻지 못한다고 11절에 기록하고 있는데, 여기서 밤낮이란 영원한 시간을 말하고 그것도 단 한번의 쉼도 허락되지 않는 고난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4. 더 놀라운 사실은 인내하지 못하고 우상숭배에 빠진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선포된 후에 성도가 받는 영광을 표현하기를 「주 안에서 죽는 자들」 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목숨을 잃는 한이 있더라도 타협할 줄 모르는 신앙의 절개를 지킨 순교자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세례요한이 목 베임을 당하는 일은 있어도 자신의 영적 절개를 버리지 않은 것과 같으며, 이것은 이미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던 다니엘과 세 친구처럼 타협할 줄 모르는 오직 하나님 중심의 신앙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참된 신앙이란 육신이 비록 흙으로 돌아간다고 하여도 함께 소멸되는 그런 것이 아니라 영원한 영광중에 빛나고 자랑이 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주님의 위로와 소망입니다.
그렇다면「주 안에서 죽는 자들」의 받을 영광이 무엇입니까?
믿음을 지키려고 목숨 걸고 싸운 영적 전투 후에 받을 안식이 보장되었습니다.
특히 「이는 저희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고 함으로 세상에서 예수 이름으로 행한 모든 의로운 행위가 하나도 없어지지 아니하고 영원히 남아 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이지만, 구원 받은 자의 의로운 행위에는 영원한 상급이 따라 오는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은 건강할 때, 생명이 있을 때, 주님이 천상으로 올라오라고 부르시는 그 날까지는 반드시 의로운 일에 힘을 쏟아야 합니다.

5. 의로운 일이라고 하면 내 믿음을 지키기 위해 낙심하지 아니하고 마지막까지 선한 싸움을 싸우는 것이 의로운 일이고,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상관하지 말고 남들도 나와 같이 예수 믿어 구원받게 하는 전도의 일에 힘쓰는 것이 의로운 일이며,  
나도 어렵지만 나보다 더 어려운 믿음의 형제들의 어려운 형편을 돌아보아 사랑으로 구제하고 섬기는 것이 의로운 일이며,
선교와 건축 등의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헌신하고 봉사하는 것이 의로운 일이며, 이 모든 일의 결과를 내게로 돌리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 감사하고 그분의 영광을 위하여는 내 생명까지 희생의 재물로 드리는 것이 의로운 일인 줄 믿습니다.
바로 이것이야말로 마지막 까지 믿음을 지키는 자가 받을 축복이고 행복입니다.
특히 「주 안에서 죽었」다는 것은 그 생명과 영광과 모든 미래를 주님께 의탁했다는 말입니다.

바로 이것이 마지막까지 낙심하지 아니하고 믿음을 지킨 자의 행복인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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